이기원 . 강신호 . 주용성 사진집 발간
2022년 경기문화재단 지역문화지원 활성화 지원사업으로 대안문화학교 달팽이에서 기획주관으로 사진가 강신호, 주용성의 사진과 이기원(사진가 및 사진평론)의 자료사진을 종합하여 발간되었다.
기획의도
이기원 (대안문화학교 달팽이)
안성(安城), 결코 평안하지 않은 삶을 살았던 고장이었다
길은 사통팔방으로 열려있고 인근의 너른 농토와 적당한 높이의 산세는 전국에서 모여 쌓이는 물산物産 공간 장터가 서기는 안성맞춤이었다. 이곳을 찾는 장꾼들의 발길만큼이나 잔인하고 무도한 흉악의 침략 말발굽 소리가 잦은 곳 이었다 .
이토록 편안하지 않았던 고장, 안성에 민초들의 소박하고도 간절한 염원이 담은 미륵들을 불러 들였는데 이런 미륵이 안성의 골골에 수 십 기가 넘었다. 시답잖은 돌조각 미륵 앞에 고되고 신산한 삶을 벗어나게 해 달라는 메시아를 목 놓아 기다렸고 아들 낳기 위해 미륵 코와 귀를 갈은 돌가루 먹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자식들 길흉화복과 풍년 농사를 위해 손바닥 다 닳도록 빌고 빌었던 결코 평안하게 살지 못했던 땅, 안성.
경기문화재단에서 지역의 소중한 문화자원을 발굴하고 활성화하는 지원사업을 받아서 시작한 ”그 많은 미륵은 어디에서 왔을까“를 안성에 모신 미륵의 전설과 희미한 신화 속으로 뛰어난 사진가 두 분과 문화인류학, 민속학 역사에 밝은이들과 함께 들어가 본다.
산천도 의구하지 못했고 인걸도 간데없는 세월이 흘렀다. 벌써, 2~30년이 훌쩍 흘러간 즈음에 찾은 미륵 인근 마을은 휑하니 비고 썰렁했다. 그간 많은 분들이 미륵을 따라 간 모양이다.
전설을 이야기 해 주던 재담꾼 어른들도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었고 묵묵히 세월을 먹고 사는 미륵만이 우뚝 서 있는 풍경들
돌쪼시(석수장)가 뭉툭하게 쪼아놓은 각양각색의 미륵불 특성을 사진에 담아내는 작가의 눈은 빛나고 예리했다
꽃 비 내리던 봄부터 우수수 떨어진 낙엽을 밟는 소리를 들으며 오르고 내린 길은 여전히 힘들었다.
민속학자들이 정리해준 사료를 바탕으로 미륵의 모양새는 물론, 마을에서 회자되던 민담을 새겨 넣고 주변부의 풍경까지 연결하는 사진작가들. 미륵이 품고 있는 심상한 이야기들을 함께 찍어내는 것이 여간 곤혹스럽지 않는 작업 이었을 것이다. 도대체, 이 많은 미륵들은 왜? 하필이면 평온하지 않는 안성 땅에 그토록 많이 오셨을까?
평온하지 않았던 땅 안성에 뿌리를 내린 미륵님들은 온 민초들을 품에 안으면서 불안과 죽음,고단한 삶까지도 어루만지시며 이들을 달래고 안아내었을 것이다.
일곱 달을 미륵 작업 스탭들과 함께 하며 한 올 한 올 직조 하듯이 엮어낸 결과물이 품격과 수준 높은 책으로 발간된다는 것에 더 할 나위 없는 기쁨이다.
그동안 고생해주신 스탭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무엇보다 이 작업을 하게 해 준 경기문화재단 관계자님들에게 감사의 마을을 전한다.
2022년12월
사진작업노트
강신호(Photographer)
경기문화재단과의 2022년 지역문화자원 활성화지원사업의 일환으로 경기도 안성시 관내의 미륵을 촬영해 보자는 제안을 받고 시작했던 작업은 많은 설레임속에 이루어졌고, 시간이 갈수록 내 안에 있던 막연한 미륵들이 점점 더 실체를 잡아가고 구체화 되어지고, 미륵들은 종교에 국한되지 않고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한국인의 상징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민중들, 보통 사람들이 염원하는 미래이고 희망의 상징이었고 현실의 질곡과 고통을 이겨내는 삶의 원동력이었다. 현실에 대한 고통을 미래에 대한 에너지로 승화 시키며 역사의 공포를 이겨 냈던 우리 민족의 저력이 그 오랜 세월동안 산야에 홀로 서서 지켜낸 미륵에 담겨져 있었다.
안타까운점은 수 많은 미륵들이 특정 무속인들에 의해 구속되고 치장 되면서 그 빛을 잃어가고, 일부의 국한된 사람들만 누리게되는 환경이 보통사람들과 멀어지는 계기가 된 듯 하여 한편으로는 서글프다.
안성시에 산재된 미륵들을 바라보며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을 가져 본다.
전국에 산재된 민중문화들이 얽히고 설킨 실타래를 풀어내어 우리 문화의 옷을 지어내야 한다. 그 것이 우리가 살아 버티어온 바탕이고 혼 이기에 더 절실하다.
As part of the 2022 regional cultural resource revitalization support project with the Gyeonggi Cultural Foundation, it started after receiving a proposal to photograph Maitreya within the jurisdiction of Anseong-si, Gyeonggi-do. The work was done with a lot of excitement, and as time went by, the vague Maitreya within me became more and more tangible and embodied, and I realized that Maitreya is not limited to religion, but has a long-standing Korean symbol intact.
It was the future that the people and ordinary people longed for, a symbol of hope, and a driving force in life to overcome the oppression and pain of reality. The potential of our nation, which overcame the horrors of history by sublimating the pain of reality into energy for the future, was contained in Maitreya, which stood alone in the mountains and fields for a long time to protect.
The unfortunate thing is that numerous Maitreya lose their luster as they are restrained and decorated by certain shamans, and the environment that only a limited number of people enjoy seems to have become an opportunity to distance themselves from ordinary people, which is sad on the one hand.
Looking at the Maitreya scattered in Anseong City, I think that there is still a long way to go.
We have to unravel the tangled threads of popular cultures scattered across the country and weave the clothes of our culture. It is more desperate because it is the foundation and soul that we have survived.
프롤로그
홍원의(안성맞춤박물관 학예사)
안성은 전국적으로 미륵이 많기로 유명하여 미륵의 고장이라고 불린다. 지금까지 미륵으로 밝혀진 불상이 17곳인데 그 중 죽산의 남산미륵과 금광면 먹뱅이미륵은 도난 당하여 현재 없으며 도림리미륵은 행정구역상 천안시에 속한다. 따라서 현재 안성시에 남아있는 미륵은 14곳에 위치한 23기이다. 기솔리 석불입상이 2기, 아양미륵이 2기, 궁예미륵이 3기 등 쌍미륵이나, 협시불, 사방불과 같이 4기가 같이 모셔져서 숫자로는 더 많다.
미륵은 석가모니의 뒤를 이어 56억 7천만년 후에 세상에 출현하여 석가모니불이 구제하지 못한 중생을 구제할 미래의 부처이다. 도솔천의 내원궁에 보살로 있다가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해 중생들을 구제할 것이라고 석가모니불이 예언하였다. 그래서 미륵불상이 봉안된 불전을 용화전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56억 7천만년을 기다릴 수가 없다. 그렇지만 하루라도 빨리 미륵불이 와서 우리를 구제해 주길 바라는 그런 믿음이 곳곳에 돌미륵을 깎아 세우게 만들었다.
그런데 모양으로 보아 태평미륵이나 쌍미륵처럼 보개(寶蓋;갓)를 쓰고 있는 등 누가 봐도 미륵인 경우도 있지만 죽산리미륵처럼 모양으로 봐서는 도저히 판단이 안 되는 경우 도 있다. 사실 미륵은 처음부터 미륵으로 생각하고 깎아서 모시는 수도 있지만, 후대에 사람들이 미륵으로 믿으며 기도해서 중간에 미륵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이 미륵으로 믿으면 그것이 바로 미륵이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전국적으로 미륵이 과연 몇 기나 분포하는지 또 안성에는 몇 기가 분포하는지 조사가 어려운 이유이다.
앞으로 전국적으로 좀 더 미륵에 대한 조사가 많이 진행되면 확실한 숫자가 알려질 것이나 안성은 전국적으로 따져 봐도 미륵이 가장 많이 분포하는 고장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국에서 안성에 미륵이 가장 많이 분포하는 지의 여부가 핵심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왜 안성사람들이 미륵을 많이 세우고 믿어왔는가 그리고 안성의 미륵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안성의 미륵은 기솔리 쌍미륵, 매산리 태평미륵처럼 5m가 훌쩍 넘는 대형불상인 경우도 있고, 대농리미륵이나 죽리미륵처럼 2m 남짓한 아담한 불상도 있다. 또 안성 시내의 아양미륵처럼 시내 한가운데 있어 주민들의 신앙의 대상이 되는 것도 있으며, 서운면 동촌리 미륵처럼 포도 과수원 비닐하우스 안에 위치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것도 있다. 안성 미륵은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사람이 조각한 것이 아닌 평범한 형태의 불상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투박한 솜씨에 많은 부분을 생략하고 단순화시켜 얼굴 모습도 아주 친근해 보인다.
STAP
총 괄 이기원
기 획 이기원 이신재
글 작업
총괄 글 작업 홍원의 /민담 글 작업 이신재
사진작업 강신호 주용성
드론작업 김용환
출판도서번호 SBN 979-11-9817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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